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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부터 건강하기

치매 초기 가족의 감정 변화 대응법

by 방통e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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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진단을 받은 부모님과의 삶은 단순히 병을 함께 겪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관계가 변하고, 역할이 변하며, 감정의 무게가 달라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자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부모님의 일정을 챙기고, 약을 확인하고, 병원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몸은 커졌고, 사회적 책임도 늘었지만,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그들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런 감정이 충돌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혼자 울었던 날도 있습니다.

 

노인, 치매

1. 치매 진단 직후,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의 충돌

부모님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많은 이들이 겪는 첫 반응은 혼란입니다. "이게 진짜 치매인가?", "진단이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의심부터, "우리 가족만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는 억울함까지. 감정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복잡하게 찾아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부모 부양’이라는 책임이 강하게 강조되어 온 만큼,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 아닌 가족의 관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상실의 5단계’로 설명합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겪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치매라는 질병은 단번에 모든 기능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무너뜨려 가기 때문에, 보호자는 계속해서 그 단계를 반복해서 겪기도 합니다.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은 무기력해지고, 일주일 후엔 다시 희망을 품고 계획을 세우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죠.

이러한 감정은 절대로 숨기거나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입니다. 가족끼리의 감정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동일한 상황을 겪고 있는 보호자 그룹, 상담 센터, 또는 커뮤니티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감정은 나눌수록 가벼워지고, 이해받을수록 치유됩니다. 초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매 돌봄의 첫걸음입니다.

2.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돌봄의 시작입니다

치매 진단 이후 보호자의 감정은 단순히 슬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라는 고민이 쌓이면서 점점 심리적 압박감과 피로가 누적됩니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하면, 결국 그것은 몸의 피로로 나타나거나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족 간 불화, 요양 선택에 대한 갈등, 돌봄 분담의 불균형이 그 예입니다.

보호자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정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정서적 체크’가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인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때로는 일기 형태로 정리하거나, 모바일 감정일기 앱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감정을 기록하는 습관은 자기 인식을 높이고,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간의 감정 공유도 중요합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심리적 부담은 배가되고, 남은 가족들과의 감정적 거리도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보호자 회의를 정기적으로 갖고, 각자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을 말로 표현하는 시간은 필수입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책임의 균형도 자연스럽게 잡히게 됩니다.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다룰 줄 아는 것이 진짜 성숙한 돌봄의 시작입니다. 나의 감정과 마주하는 법을 배울수록, 나는 더 좋은 보호자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3. 돌봄 태도는 '계획'보다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돌봄이라는 단어는 종종 효율성, 계획, 관리와 같은 개념과 함께 사용됩니다. 그러나 특히 치매 돌봄에서는 ‘관계의 회복’이 가장 먼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치매 환자에게 있어 ‘정서적 안정’은 약물만큼이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전처럼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해도, 감정은 여전히 통합니다.

초기에는 환자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안감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는 보호자의 말투, 표정,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다정한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돌봄 태도는 지시적이지 않고, 관계 중심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 10분이라도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같이 사진첩을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활동, 매일 아침 같은 인사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이처럼 작고 단순한 행동들이 환자에게는 큰 안정감을 줍니다. 보호자에게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중요한 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하루쯤은 짜증을 내도 괜찮습니다. 그 모든 순간은 진짜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일들이니까요. 중요한 건, 다시 돌아와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여전히 함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 말 한마디가 치매 돌봄의 방향을 바꾸고, 보호자의 삶을 지탱해주는 따뜻한 기반이 됩니다.

마무리

치매 돌봄은 단순히 신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관계 전체를 다시 구성해나가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의 시작은 보호자인 우리의 감정을 인정하고,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며,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실수하고, 때로는 지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걷는다”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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